2016년 9월 5일 월요일

편견에 대하여


 이 세상은 편견이 지배하고 있다. 지금 바로 내가 가진 편견을 떠올려 보자.











몇 가지나 생각해낼 수 있었는가? 10개까지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다. 편견은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다. 여자는 핑크색을 좋아하고, 남자는 파란색을 좋아한다. 뚱뚱한 사람은 운동을 못한다. 여자는 드세면 안 되고, 남자는 여성스러우면 안 된다. 이런 편견들을 모두 나열하려면 며칠 밤이나 새워야 할지 상상하기 힘들다. 첫 문장에서도 나는 읽는 사람의 편견을 시험했다. 글을 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을 깨트려서라도 읽는 분들과의 편견과 마주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이 글과 함께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보수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는 편견을 특별히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편견을 인간 역사의 표현이자 전통에서 나오는 진정한 지식이라고 보았다. 실제로 많은 경우 편견들은 불필요한 노력을 막아주기도 한다. 편견들은 얼추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있고, 덕분에 간혹 대단한 효율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그의 편견에 대한 믿음은 대단한 통찰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통찰력도 일반화의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편견이라는 우리의 '통상적 믿음'은 예외상황에 대한 고려를 대부분 배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선택적 믿음'은 우리 마음속에 종종 '전체에 대한 진리'로 둔갑하고는 한다. 그 편이 편하기 때문일까? 굳이 생각하는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면에서 편견은 쉽게 생각하고 싶은 욕망이 찾는 도구이다. 많은 편견들은 지식으로 보기에는 짜임새가 너무 떨어진다. 
  편견을 문제 삼고 싶은 이유는 허술한 믿음이 가져오는 맹목적인 공격성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것을 지키는데 힘쓰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인간 정신의 큰 일부인 '믿음'은 격렬한 보호를 받기 마련이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끼리는 모이기 마련이고, 당연하게도 배타성을 지니게 된다. 배타성은 필연적으로 가해를 야기한다. 모든 대상을 틀에 맞추려 하고, 맞지 않는 부분을 도려내려 한다. 이러한 편견들은 우연히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출처를 알 수 없다. 그러다 어느새 머릿속에서 내 생각인 듯 둔갑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은근슬쩍 건너뛴, 날치기 생각인 경우가 많다. 
 편견은 그 속성 자체로서도 오류를 지니고 있다. 대부분 한두 문장으로 표현되는 편견은 주변 맥락에 대한 이해를 담지 못한다. 그 어떤 상황도 한 문장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편견은 성경 속 하나님 말씀인 양 한 문장으로 무언가를 쉽게 정의 내리려 한다. 설령 경험을 통해 형성된 편견이라 할지라도 인간 경험이 가진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할뿐더러, 영원할 수 도 없다. 활동범위와 경험의 폭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과거의 예외가 현재에 와서 일반적 상황이 되는, '시간의 필터링'현상으로 인해 편견이 진리로 자리 잡을 틈은 더더욱 없다.  

  전술한 이유로 모든 편견은 의심해야 마땅하다. 예컨대 '정말로 여자는 공간지각력이 떨어지는 걸까? 정말로 흑인은 타고나게 수영을 못하는 걸까?'와 같은 가장 일반적인 편견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해, 그때그때 입에서 무책임하게 튀어나오려고 하는 편견들까지 모두 의심해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의심은 편견과 맞설 기회를 준다. 편견은 너무나 허술함에도 손쉽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그 대상이 자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편견이 의견이 될 때, 문제는 하나씩 해결된다. 충분히 나의 생각을 거쳤으며, 함부로 정의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의견화 하기 위해서는 의심으로 시작하여 각자의 방법으로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논증하거나 다양한 연구자료를 참고하는 방법을 사용해볼 수 있다. 당연히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한다면 금상첨화다. 이처럼 생각을 의견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오류나 사실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때, 편견은 우리에게 새로운 앎을 주는 보물창고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건너야 할 관문은 과연 정말로 내 생각의 결과였는가 하는 오답체크일 것이다. 오롯이 나의 생각을 거쳤는가? 충분히 알아보았는가? 누군가에게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답이 '예'라면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어져 있다.  이 과정을 거친 뒤 나의 의견이 편견과 닮았는지 닮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완성된 나의 의견은 이미 그 탄탄함으로는 편견이 비할바가 못되고, 의견이 가진 겸손함은 편견에 비해 따뜻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하나둘 내 마음속 편견을 바꾸어 나가다 보면 내 눈을 가리고 있던 편견들이 오히려 시야를 밝혀주고 있을 것이다. 그 후에는, 당당하게 나의 의견을 표현하는 일만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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